쾅프로그램의 앨범을 듣고 있다. 물론 태현군의 요청이 있었다. 기한은 벌써 많이 넘겼다. (평을 쓸만한 깜냥이 아니라 감상문이라도 한번 써보겠다는 심산으로 들어본다.) 태현군이 아마츄어증폭기를 2005년에 처음 접했던 때로부터 8년정도가 지난 것 같다. 언젠간 태현군이 내게 그날의 강남 어느 스튜디오에서의 아마츄어증폭기의 공연을 보고 어떤 자극을 받은 것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었다. 정말 매력적인 자켓을 입고 그 스튜디오로 갔던 게 기억난다. - 한받 |
박력 있게 예민하고 여린 기운을 쥐락펴락한다.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한밤에 이 앨범을 많이 들었다. 내겐 젊음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갖게 하는 음악이다. 젊음은 참 눈이 시리구나 생각해본다. 아름다운 앨범이다. - 백현진 |
[나 아니면 너]는 쾅프로그램의 첫 정규 앨범이다. 그들이 공연을 막 시작했을때 사람들은 한참 조이 디비젼을 이야기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그때의 인상과는 달리 지금 이 앨범을 듣고 있자니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 시간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가고 싶은 길로 찾는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그 결과물인 "나 아니면 너"엔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가득 하다. (뭔가 굉장히 꾸물거리는, 혹은 멀리서 멤도는 이상한 질감들) 지금 그것들이 굉장히 맘에 든다.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다소 낯선 음악일수도 있지만, 듣다보면 그 질감들과 함께 놀고 있을꺼라고 확신한다. - 박다함 (노이즈 뮤지션, 헬리콥터레코즈 대표) |
기타리스트 최태현씨가 혼자서 '로빈슨 크루소'를 치던 때 지인의 소개로 처음 듣고, 유투브에서 라이브 영상을 찾아 봤을 때 처음 느낀 느낌은 '이 분 좀 아픈 사람인가…' 였다. 분열적인 가사, 공통점이 있는 다른 음악가가 딱히 생각나지 않는 것, 특유의 몸사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후에 드러머 김영훈을 영입해 최태현+김영훈 이라는 이름을 한 두 사람이 2011년 51+ 페스티벌에서 비를 맞으며 첫 공연을 하는 것을 보았고, 곧 그들은 쾅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하늘에서 천둥처럼 떨어졌다'. 기타와 드럼의 단순한 구성에 루프를 얹은 구성에서 시작해서, 루프를 아예 빼거나 작은 노이즈 세트를 구성해 시도하기도 하는 등 여러 실험을 반복하던 이들은 초기의 쾅프로그램보다 더 정밀해지고 더 아픈 모양새를 갖췄다. 동시대 한국 음악가들 중 어느하고도 접점이 없지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포스트펑크적'인 느낌 외에도 미니멀리즘, 초기 일렉트로닉, 뉴 웨이브의 영향도 보인다. 멜로디가 빈 구석 없이 달려드는 와중에 가사는 초점이 없고 정신이 나가 있다. 박자는 편집증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반면 보컬은 계속 불안한 선을 그으며 나간다. 이 두 사람은 상황을 완전히 통제된, 기기묘묘한 열 곡을 빡빡히 그들의 첫 앨범에 채웠다. 도시를 관찰하고 근근히 살아가는 룸펜들 같기도 하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 기어다니는 벌레들 같기도 한 이들이 만든 음악이다. '꽃땅'이라는, 지금은 없어진 한강진역 근처의 공연장이 있다. 쾅프로그램을 자주 볼 수 있었던 곳인데, 이 밴드는 그곳이 남긴 최고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쾅프로그램의 기타리스트 최태현은 꽃땅의 공연 기획과 연주를 자주 하며 공간과 밴드 두 개를 이은 연결점을 만들게 되었다. 음악 자체가 연고지를 가지고 그 공간의 색깔을 만들어 내는 걸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앨범이다. 2013년은 기록될 만한 엄청난 앨범도, 공연도 나오지 않은 이상한 해이다. 페스티벌은 난립하지만 실제 나오는 음악의 질은 떨어지고, 관객과 여러 씬의 양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음악과 지역을 논하는 목소리는 없어지고, 서울 기반의(한국 기반의) 밴드에 쏟아지는 관심은 극히 적은 수준이다. 가히 이 씬의 핵겨울이라 할 만하다. 지금 이 때, 이 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적'인 밴드가 아닐까 한다. '한국적이다'라는 타이틀을 달았던 많은 음악가들과는 너무 다른 이 앨범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논하고 오해하던 '한국적'인 음악에 대해 정의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 서울이라는, '수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난민 '로빈슨 크루소'가 만든 이 앨범은 지난 EP의 날것의 향을 훨씬 넘어 더 풍부해졌다. '좌우로 밀고 위로 밀고' 하는 이 첫 앨범, 분명 기대하게 될 것이다. - 이잔반(11:11) |
쾅프로그램은 다른 형식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 없이 모색 중인, 특히 국내에는 몇 안되는 밴드 중의 하나일 것이다. 최근엔 자신들의 근간으로 삼아온 (지겹겠지만) 포스트 펑크 스타일에 점점 더 노이즈를 끌어들이는 시도를 보여주는데, 그 모색의 과정들을 앨범을 통해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첫 곡 WHATCH를 꼽고 싶은데, 인트로 격의 트랙으로 실려있지만, 최근 들은 가장 강렬한 곡 중 하나이면서, 그간 쾅프로그램이 끌어들여온 요소들—노이즈, 기타 루프, 멜로디 없이 던지는 보컬, 특유의 드라이브감 넘치는 기타 스트로크—이 가장 유기적으로 결합된 어떤 정점으로 보인다. 코러스에서 터져나오는 기타는 압도적인 감흥을 주는데, 듣는 이에 따라선 거의 숨이 멎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정세현 (404) |
쾅프로그램의 새앨범을 들었다. 쾅프로그램에 대한 나의 기억 중에 가장 생생하고 것은 양평 두물머리에서 있었던 폭우 속의 공연이다. 나는 멀리 서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긴장과 묘한 흥분을 갖고 그것을 봤다. 계속해도 괜찮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아수라장 속에서 천둥과 번개가 쾅프로그램을 갖고 연주하거나 쾅프로그램이 천둥과 번개를 음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쾅프로그램의 앨범에는 그 음악적 장관, 광기어린 풍경이 먹구름처럼 깔려있다. 언제 내려칠지 모르는 번개는 무너진 시간, 폐허 속에 자신이 서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쾅프로그램은 이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 들린다. 그 노래는 슬프기도 하고, 쾅프로그램이 번개에 연주되는 듯한 광경을 본 밤처럼 묘한 기운으로 가득하기도 하다. - 류지완 (악어들, 음악비평지 칼방귀 동인) |
1. 딱히 ‘이게 왜 좋게 느껴지지?’를 생각하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좋은 음악들이 있다. 이 음반은 직관적으로 좋은 음반이다. 사운드가 음악에 어울리게 잘 잡혀있기 때문이다. 사운드가 좋으니 디테일도 귀에 잘 들어오고, 디테일이 귀에 들어오니 음악의 구성과 구조도 머릿 속에 정확하게 그려진다.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잘 구현한 영리한 음반이다. 이 음반은 잘 만들었다. 잘 만들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도 귀에 잘 들어온다. * 부연하자면, 한국의 음반들은 많은 경우 지나치게 스탠다드하게 믹스되어 음악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거나 잘못된 에고트립의 결과로 개성있다기 보다는 아마추어스럽기만 한 사운드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쾅프로그램은 음악의 특성상 후자로 귀결될 위험이 있었는데─게다가 한국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사운드를 잘 만든 전례가 거의 없는데─영리하게 둘 다 피해갔다. 2. 그런데 이 음반이 잘 만든 것을 넘어 훌륭한 느낌마저 주는 것은 이 음반이 무언가를 ‘제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1) 2인조라는 포맷일 수도 있고 2) 딜레이와 리버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한국에선 좋은 전례를 찾기 힘든) 사운드(의 공간 설계)일 수도 있고 3) 주로 뉴웨이브와 포스트 펑크로부터 가져온 레퍼런스들을 활용하는 방식들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4) 고립적이고 자폐적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론 무언가를 계속 선언하고자 하는 정서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5)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각자가 취하고 싶은 것을 취하면 될 것이다. 3. 이러한 제시들이 지금의 한국─한국의 음악이라거나, 씬이라거나, 사회라거나, 세대라거나, 여하간─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고 있거나, 반대로 만들어내고 있다 생각한다. 그것이 이 음반의 맥락을 만들어준다. 4. 이 음반은 직관적으로 좋으며, ‘이게 왜 좋게 느껴지지?’를 생각하면 더 좋다. 그리고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훌륭해진다. 이 음반은 훌륭한 음반이다. 5. 어떤 사람들은 이 음반을 중요한 음반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이다. 아예 관심이 없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판단이며 각자는 그에 따라 각자의 길을 갈 것이다. 그것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 어차피 각자는 각자의 길을 갈 것이다. - 회기동 단편선 |